음악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가장 늦게 기억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장 오래 남는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장면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질 수 있지만, 음악은 몇 초만 들어도 작품 전체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재일 작곡가는 바로 그런 음악을 만드는 인물입니다. 정재일은 영화 <기생충>, <옥자>, <브로커>, <미키17>과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음악을 만든 대한민국 작곡가입니다. 작품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영화음악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정재일 작곡가는 누구일까?
많은 사람들이 영화 <기생충>이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알고 있어도 정재일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봤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 역시 이번 글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이름보다 작품 속 음악을 먼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정재일 작곡가는 피아노를 비롯해 여러 악기를 다루는 작곡가이자 음악가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음악(Score)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특히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을 맡으면서 해외에서도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정재일의 음악은 화려한 멜로디를 앞세우기보다 장면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유명합니다. 감독보다 앞서 나가는 음악이 아니라, 화면과 배우의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음악을 추구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에서도 “음악이 장면보다 앞에 나서기보다, 장면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철학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름은 몰랐지만 음악은 이미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좋은 작곡가는 자신의 이름보다 작품을 먼저 기억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처럼 느껴졌습니다.
정재일 작곡가의 작품 속 대표 음악
영화 <기생충>에서는 바로크 음악을 연상시키는 현악기와 건반 악기를 활용해 부유한 가족의 우아한 공간과 그 안에 숨어 있는 계층 갈등을 함께 표현했습니다. 대표곡 ‘The Belt of Faith’는 김씨 가족이 계획을 실행하는 장면을 빠르고 정교하게 끌고 가며, 우아한 음악과 위험한 행동이 대비되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Soju One Glass’는 정재일이 작곡하고 봉준호 감독이 가사를 썼으며, 배우 최우식이 노래했습니다. 밝게 들리는 기타 선율과 영화가 남긴 씁쓸한 현실이 대비되면서 결말의 감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곡입니다.
영화 <옥자>에서는 거대한 기업에 맞서 친구를 구하려는 소녀의 모험에 맞춰 활기와 불안이 함께 느껴지는 음악을 만들었고, 영화 <브로커>에서는 피아노와 어쿠스틱 악기를 중심으로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인물들이 가족처럼 가까워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표현했습니다. 영화 <브로커> OST에는 ‘Staircases’, ‘In The Beginning Was Rain’, ‘To Be a Bird’ 등의 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 작품 | 대표 음악 | 음악이 맡은 역할 |
|---|---|---|
| 드라마 <오징어 게임> | ‘Way Back Then’ | 어린 시절의 놀이와 생존 경쟁을 대비 |
| 영화 <기생충> | ‘The Belt of Faith’ | 계획이 진행되는 속도와 계층적 긴장 표현 |
| 영화 <기생충> | ‘Soju One Glass’ | 밝은 선율과 씁쓸한 결말의 대비 |
| 영화 <브로커> | ‘To Be a Bird’ | 인물들이 관계를 만들어 가는 따뜻한 감정 표현 |
| 영화 <미키 17> | ‘Immigrant’, ‘Frog’ 등 | 복제 인간과 낯선 우주 세계의 분위기 구축 |
정재일은 이후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에도 참여하며 <옥자>, <기생충>에 이어 협업을 이어 갔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활용한 보다 크고 고전적인 음악으로 복제 인간을 다룬 낯선 세계에 우아하면서도 불편한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결국 정재일의 작품에는 쉽게 반복할 수 있는 하나의 고정된 음악 공식이 없습니다. 대신 각 작품이 가진 핵심 감정을 먼저 찾고, 그 감정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낼 소리를 선택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는 불완전한 리코더를, 영화 <기생충>에서는 정교한 바로크풍 음악을, 영화 <브로커>에서는 따뜻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대표곡이 정재일의 작품은 아니다
여기서 하나는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전체 OST 앨범에는 정재일뿐 아니라 23과 박민주 등 다른 음악가의 곡도 함께 수록돼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정재일의 곡으로 알고 있는 ‘Pink Soldiers’는 정재일이 아니라 23이 작곡한 음악입니다. 음원 서비스에서는 23의 본명인 김성수로 표기되기도 합니다.
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장면에 사용된 ‘Fly Me to the Moon’ 역시 정재일의 창작곡이 아니라 기존 곡을 새롭게 편곡해 활용한 사례입니다. 따라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적 성과를 정재일 한 사람의 작업으로만 설명하기보다, 그가 음악감독으로서 전체적인 방향을 잡고 여러 음악가의 곡이 함께 작품의 세계를 완성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럼에도 ‘Way Back Then’처럼 작품의 출발점과 정서를 대표하는 음악을 정재일이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단순한 리코더 선율이 전 세계에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작품에서 음악이 얼마나 강한 식별 장치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은 왜 강하게 기억될까?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이 특별한 이유는 아름다운 선율보다 장면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리를 의도적으로 배치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화면에서는 참가자들이 목숨을 걸고 경쟁하지만, 음악에서는 어린 시절의 놀이와 학교 운동장을 떠올리게 하는 단순한 리듬이 들립니다. 익숙하고 순진한 소리와 잔혹한 상황이 충돌하면서 시청자는 일반적인 공포음악보다 더 큰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대표곡인 ‘Way Back Then’은 정재일 작곡가가 만든 곡입니다. 서툴게 연주한 듯한 리코더 소리와 단순한 타악기 리듬을 사용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음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어긋나 묘한 불편함을 남깁니다. 정재일은 실제로 리코더를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았지만 직접 연주했고, 황동혁 감독은 매끄럽게 교정한 소리보다 불완전한 원래 연주가 작품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익숙한 동심을 불안한 소리로 바꾸다
보통 서바이벌 장르에서는 빠른 박자와 무거운 타악기, 긴장감을 높이는 전자음악을 활용합니다. 그러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어린이의 합주처럼 들리는 음악을 사용해 정반대의 감정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방식이 음악을 쉽게 기억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멜로디 자체는 복잡하지 않지만, 처음 들었을 때의 장면과 감정이 워낙 강하게 결합돼 있기 때문입니다.
정재일 작곡가는 참가자들을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절박한 상황에 몰린 평범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매끄럽지 않은 소리로 표현했습니다. 정확하고 웅장한 연주보다 숨이 부족하고 음이 흔들리는 연주가 등장인물들의 절박함을 더 잘 보여준 셈입니다.
단순한 멜로디가 세계적인 문화 코드가 되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이후 OST는 작품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유튜브의 패러디 영상과 리액션 콘텐츠, SNS의 짧은 영상, 각종 예능과 광고를 연상시키는 편집에서 비슷한 리듬과 분위기가 반복적으로 활용됐습니다. 음악을 몇 초만 들어도 초록색 운동복과 게임장, 참가자들의 긴장된 표정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로 작품의 시각적 이미지와 음악이 강하게 결합된 것입니다.
저 역시 정재일 작곡가의 이름은 알지 못했지만,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은 바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음악감독의 성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이름을 앞에 드러내지 않아도 음악을 통해 작품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복잡하고 화려한 음악만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선율이라도 작품의 핵심 감정과 정확하게 연결되면 로고나 대표 색상처럼 강력한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이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K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작품보다 오래 기억되는 음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좋은 영화와 드라마에는 오랫동안 기억되는 음악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작품을 대표하는 OST 작곡가들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한스 짐머(Hans Zimmer)는 영화 <인터스텔라>, <인셉션>, <다크 나이트>를 통해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전자음악을 결합하며 현대 영화 음악의 흐름을 바꾼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는 영화 <스타워즈>, <해리 포터>, <쥬라기 공원>의 메인 테마를 작곡하며 ‘몇 초만 들어도 작품이 떠오르는 음악’의 대표적인 사례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히사이시 조(Joe Hisaishi)는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의 음악을 맡으며 일본 콘텐츠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음악만 들어도 작품이 떠오르게 만드는 것, 이것이 세계적인 OST 작곡가들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OST는 K콘텐츠를 기억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주인공
많은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이야기할 때 배우와 감독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의외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음악인 경우도 많습니다.
저 역시 정재일 작곡가의 이름은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은 이미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좋은 작품에는 대부분 이런 음악이 있습니다.
영화 <장화, 홍련>의 ‘돌이킬 수 없는 걸음’, 영화 <올드보이>의 메인 테마, 영화 <인터스텔라>의 ‘Cornfield Chase’,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메인 테마처럼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작품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저는 이것이 OST가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의 얼굴이나 명대사는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잊힐 수도 있지만, 음악은 짧은 멜로디만으로도 당시의 장면과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은 공개된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여전히 유튜브와 SNS, 숏폼 콘텐츠에서 꾸준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결국 OST는 단순히 배경에서 흐르는 음악이 아니라 작품을 하나의 브랜드처럼 기억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재일 작곡가는 그 힘을 가장 잘 보여준 한국의 음악가이며, 앞으로도 K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성장할수록 그의 음악 역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 <기생충>이 음악뿐 아니라 공간과 계층을 통해 한국 사회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영화 기생충이 보여준 사회의 모습, 공간과 계층을 담아낸 한국 영화 이야기도 함께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작품 속 공간 연출과 음악이 어떻게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메시지를 완성했는지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FAQ
Q1. 정재일 작곡가는 어떤 작품의 음악을 만들었나요?
정재일 작곡가는 영화 <기생충>, <옥자>, <브로커>, <미키 17>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의 음악에 참여했습니다.
Q2.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대표 음악은 모두 정재일이 작곡했나요?
아닙니다. <오징어 게임> OST에는 정재일뿐 아니라 23, 박민주 등 여러 음악가가 참여했습니다. 대표곡 ‘Way Back Then’은 정재일이 작곡했지만, ‘Pink Soldiers’는 23의 작품입니다.
Q3. 정재일의 <오징어 게임> 음악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 놀이를 연상시키는 단순한 리코더와 타악기 소리를 잔혹한 생존 게임 장면에 배치해 강한 대비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친숙하면서도 불안한 분위기가 작품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Q4. OST와 영화·드라마의 배경음악은 같은 뜻인가요?
일상적으로는 모두 OST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차이가 있습니다. OST는 작품에 사용된 전체 음악을 뜻하며, 대사 없이 장면의 감정과 분위기를 만드는 연주곡은 보통 스코어 또는 배경음악이라고 부릅니다.
Q5. 음악이 영화나 드라마 흥행에 실제로 영향을 줄 수 있나요?
네. 좋은 음악은 장면의 감정을 강화하고 작품을 쉽게 기억하게 만듭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음악이 유튜브와 SNS, 숏폼 콘텐츠로 확산되면 작품의 인지도와 상징성을 오래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참고자료
- Netflix, Squid Game Original Soundtrack
- IMDb, Jung Jae-il 작품 정보
-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영화 <기생충> 관련 자료
- The Recording Academy(Grammy), 영화·드라마 음악 관련 자료
- London Symphony Orchestra, Jung Jae-il 협업 자료
-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 정재일 작품 정보
- Variety, 영화 <미키 17> 및 정재일 인터뷰
- Pitchfork, 영화 <기생충> OST 리뷰 및 정재일 음악 분석
